어릴적 부모님이 즐겨보시던 홍콩영화는 무협영화가 아니면 액션물이었습니다. 착한 얼굴의 이연걸 아저씨나 성룡 아저씨가 악당을 물리치며 모험을 벌였고, 주윤발 아저씨나 고 장국영 아저씨는 멀끔한 얼굴로 바바리 코트를 입고 총을 쏘았지요. 재미있는 억양의 홍콩말과 이국적인 풍경으로 점철되어 있는 홍콩영화는, 어린 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은 후에 만난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조금 색다른 맛으로 다가왔습니다. 약간은 무겁고, 액션보다는 감정선에 무게를 둔, 서사 보다는 서정에 좀 더 비중을 둔 영화라고나 할까요. 예전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에서 보여준 바 있는 음울하고도 방황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정서가 화양연화에서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화양연화를 지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단연 무겁고도 느릿한 분위기입니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감정선을 따라서 천천히 움직이는 카메라 앵글과 붉은 빛깔과 정지되어 있는 듯한 미장센은, 느린 이야기 전개만큼이나 답답하고 지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양조위나 장만옥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빠른 전개로는 이들의 심경을 제대로 담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젊은 청춘 남녀도,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없는 사이도 아니었던 이들에게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속전 속결의 이야기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사랑 방식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주성치 영화처럼 흥겹고 유쾌하게 풀어내기에는 장만옥의 자태가 너무나 고혹적이고 아름답거든요.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어는, 본토의 보통화(중국 표준어 : Mandarin)보다는 성조가 좀 더 다양합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시끄러울 수도 있고 다소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 언어이지요. 그런데 장만옥이 사용하는 홍콩어는 그렇게 우아하고 조용하고 품위있을 수가 없었어요. 치파오를 입고 양조위와 이야기하는 장만옥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이들의 사랑은 아름답게 포장되기는 어려운 성격의 감정일 겁니다. 각자 아내와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사랑에 서서히 빠져들고, 또 그 감정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과정은 이상하게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거울을 마주보고 장만옥이 자신의 자아와 대면하게 되는 미장센이나, 영화의 말미 양조위가 작은 구멍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감정은 보는 사람마저 서서히 이들의 애틋함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맙니다.
홍콩 영화의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 화양연화였습니다.
'Feel > 영화라면 팝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E(WALL-E, 2008) :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로봇 이야기 (0) | 2014.06.27 |
---|---|
리미트리스(Limitless, 2011) :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마 (0) | 2014.06.27 |
세 얼간이 (3 idiots, 2011) : 얼간이가 아닌데? (0) | 2014.06.27 |
몬스터 호텔(Hotel Translvania, 2012) : 김원효를 닮은 그 분! (0) | 2014.06.27 |
호빗 : 뜻밖의 여정 (2012) : 호빗은 언제나 옳다 (0) | 2014.06.27 |